[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배우 이유미는 이유미만의 표정이 있다. 문장부호 같은 표정으로 수많은 감정을 대체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감정들이 있다. 결코 쉽게 가질 수 없는 얼굴이다.

이유미는 드라마 '미래를 보는 소년'으로 연기를 시작한 후 어느덧 12년차 배우가 됐다. 공백기 없이 꾸준히 스크린 활동을 이어왔고, 영화 '박화영'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지난해 드라마 '365'와 '땐뽀걸즈'로 존재감을 톡톡히 발휘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어른들은 몰라요'로 다시 한 번 위기의 청소년을 완벽히 소화하며, 보는 이들에게 수많은 감정을 선사할 예정이다.

15일 개봉한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감독 이환·제작 돈키호테엔터테인먼트)는 가출 팸의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담아낸 '박화영' 이환 감독의 두 번째 문제작이다. '박화영'은 공개 당시 유튜브 조회 수 1185만 회를 기록하며 '비공식 천만 영화'라는 수식어를 받은 바 있다. '박화영'이 어른들의 관심이 닿지 않는 가출 팸의 실태를 그렸다면 '어른들은 몰라요'는 더 나아가 10대 임산부의 유산 프로젝트라는 파격적인 설정을 다루며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중이다. 특히 '박화영'에서 해맑은 모습으로 박화영의 심기를 건드리곤 했던 세진이 '어른들은 몰라요'에선 주인공이 돼 동갑내기 주영, 그리고 재필, 신지와 함께 유산을 위한 험난한 여정을 떠나며 극을 이끈다.

이유미는 '박화영'에 이어 '어른들은 몰라요'로 세진을 다시 만나게 됐다. 앞서 '박화영'으로 10대의 일탈기를 거침없이 표현해내며 평단의 호평을 받은 만큼 캐릭터에 대한 소회가 남다를 터. 이에 대해 이유미는 '박화영'의 세진 역할이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박화영' 오디션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흥얼 흥얼 노래를 부르고 들어갔다. 이환 감독은 내 모습이 '요상하다'면서도 세진이라고 생각했다더라. 우연히 한 행동으로 운명이 됐다. 사실 인간 이유미 안에는 세진의 일부가 실제로 존재할 것이다. 굉장히 작은 부분이지만 세진을 연기할 때 확장시키면서 저랑 비슷해지는 느낌이었다. 저는 원래 캐릭터로부터 빠져 나오려 애쓰는 타입이 아니다. 몸의 일부처럼 남긴다. 사람들에게는 일상 생활에서는 즐겁지 않아도 웃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제 모습에서 세진이 존재했다. 세진이 어떤 힘듦이 있어도 웃어야 했던 감정은 모든 사람들이 알 것이다."

여전히 세진의 일부가 남아있다는 이유미. 작은 체격 안에서 단단하게 느껴지는 아우라의 이유일까. 기자가 만나본 이유미는 털털한 매력 속에서 단단한 소신을 가진 배우였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2관왕을 수상하며 올 상반기 뜨거운 기대작으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쏟아지는 관심이 무겁지 않냐는 질문에 이유미는 "작품 반응을 많이 보는 편이지만 늘 좋은 것만 볼 수 없다. 사실 댓글에 상처를 받아 잘 안 본다. 어머니가 나보다 더 많이 찾아 보시고 피드백을 해주신다. 너무 든든하다"면서 떨리는 마음을 드러냈다.

작품은 10대들의 세계를 그렸다는 점에서 '박화영'의 확장편으로 여겨질 법도 하지만 미성년자 미혼모와 성매매,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다며 전혀 다른 결의 작품이다. 파격적이고 무거운 소재의 이야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이에 대해 이유미는 "이환 감독이 시나리오를 초고 때부터 보내주더라. '도대체 뭘 믿고 나한테 이걸 하자고 하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 이환 감독이 '너를 믿기 때문이다. 너가 아니면 찍을 이유가 없다'고 하셨다. 너무 감사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며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환 감독을 꼽았다.

이환 감독의 굳은 신뢰에는 이유가 있었다. 분량과 상관 없이 '박화영'에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이유미였기에 '어른들은 몰라요'가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박화영'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이유미는 다양한 감정을 수도 없이 복기했다. 그는 "워크샵 때는 한 씬 한 씬을 리허설처럼 했다. 감정을 극까지 달아 사용했다. 오히려 촬영에 들어갈 때는 쏟았던 감정을 마음에 담아두고 최대한 표출하지 않았다"면서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기 위한 노력을 밝혔다.

극중 고등학생 역을 완벽히 소화한 이유미지만 실제로는 28세인 만큼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다. 그 시대의 문화를 알기 위해 노력한 지점과 캐릭터를 이해하려 했던 고민이 사뭇 궁금해졌다. 그는 "10대인 동생에게 많이 물어보거나 상상을 가미했다. 책을 보면서 상상하고 기사를 찾아봤다. 이환 감독에게 많이 들었다. 다큐멘터리, 인터뷰, 영화를 보기도 했다. 방황하는 부분을 참고하기 위해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기도 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어린 친구들이 자해하는 걸 SNS에 올리기도 한다. 너무 안타깝더라. 분명히 그런 아이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팠다.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꼈다. 세진을 연기하면서 고민이 됐다. 도대체 어른의 기준이 뭘까. 나는 어떤 어른일까. 계속 고민하게 됐다. 아직 정답을 찾진 못 했지만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에 의미를 뒀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작품 속 메시지에 대한 뚜렷한 소신도 함께 전했다. 이유미는 "'어른들은 몰라요'는 모든 게 무거운 소재다. 무겁고 부정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하지만 삶에 있어서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고 모든 것이 삶의 일부다. 자극적인 포인트만 생각하면 너무 세게 느껴지겠지만 인생에서 느껴질 수 있는 사건들, 느낌으로 생각했다. 불편할 수 있어도 부정적이진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유미는 캐릭터에 대한 열렬한 애정으로 세진의 서사를 이환 감독과 함께 만들었다. 이에 대해 "연기하는 배우가 서사를 모르면 흉내내기 밖에 되지 않는다. 레퍼런스나 지표로 삼은 작품 캐릭터는 전혀 없다. (세진은) 독보적이다.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사실 나는 어떤 캐릭터를 참고하지 않는 타입이다. 스스로 개척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각고의 노력이 담긴 작품인 만큼 아쉬움도 있을 터. 이유미는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을 갖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더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만족한다는 게 배우로서 너무 좋은 마음가짐이라 생각하지만 저는 계속 아쉬워해야 한다. 제 원동력이라 생각하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 답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문하는 것 자체가 성장"이라며 강조했다.

이유미는 마치 어린 아이 같은 배우다. 꾸준히 물음표를 던지며 답을 찾는다. 그는 연기를 포함한 모든 과정에서 정답이든 오답이든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알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중이다. 한 군데 머물러 있지 않고 꾸준히 파동을 만들어내는 이유미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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