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이미 경지에 오른지 오래지만 여전히 스스로에 채찍질을 한다. 흐트러지지 않기 위함이다. 제겐 이토록 엄격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한없이 스스럼없고 편한 배우 손현주다.

손현주가 한명회가 됐다. 기상천외한 팩션 사극 '광대들: 풍문조작단'(감독 김주호·제작 영화사 심플렉스)에서 권력의 실세 한명회는 그들 정권의 정통성을 위해 광대패를 이용해 조선 팔도를 무대로 풍문을 조작하고 민심을 흔들게 판을 짜는 인물이다.

풍채만 봐도 우람한 체구와 장대한 키, 위압적인 눈빛과 뾰족하게 솟은 귀로 거대한 경외감마저 느끼게 하는 인물. "한명회가 기골장대한 거구였다고 한다. 그래서 더워 죽겠는데 옷을 여러 겹 겹쳐있었다"고 익살인 손현주는 "귀 분장도 귀 자체 본을 떠서 본드를 씌워 붙인 것인데 귀찮아서 뾰족 귀를 한 채 다녔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원래 귀가 그러시냐'고 해서 그렇다고 답했다"며 웃겼다.

손현주는 '광대들: 풍문조작단'으로 영화에서 처음으로 사극 장르에 출연했다. 그는 사극에 대해 일종의 두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현대극만 하던 자신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제안을 받아도 거절했었다. 이를 두고 "사극을 피해 다녔다"며 웃어 보였지만 이 영화가 그를 매료시킨 건 세조실록에 기록된 기이한 현상들 뒤에 풍문 조작단이 있었단 기발한 이야기의 힘이었다.

또한 사극이 어렵지 않고,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명랑하고 발랄한 영화라는 점도 좋았다. 이처럼 재미있는 대본에 끌렸고 그동안 수많은 배우들이 한명회를 연기해왔지만, 자신이 연기하는 한명회는 어떨지 스스로도 궁금했다. "가보지 않은 영역이라 어떻게 보여질까 두렵기도 했고, 많이 궁금하기도 했다"는 손현주는 두려움을 떨치고 독보적인 한명회를 완성해냈다.

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수많은 신하들을 죽이며 권력을 잡은 세조와, 그런 세조를 임금으로 만든 지략가 한명회. 한명회는 역사 속에 남을 자신의 이름과 이들 왕권의 정통성에 집착하며 무서운 권력욕을 보인다. 손현주는 "그만한 권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을까.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극 중 세조의 미담을 꾸미기 위해 민가를 헐어버리지 않나. 그만큼 권력을 누리고 뺏기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피해를 봐야 했고, 이를 감추기 위해 더 많은 미담을 만들기 위해 집착하지 않았을까"라며 "반란으로 권력을 키워나가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처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론 12~13년 밖에 왕을 못한다. 권력이란 얼마나 덧없나"라고 전했다.

실제로 역사적 지식이 상당한 그는 "재밌어서 소설책 보듯 본다"며 "앞으로 사극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지의 세계도 가보고 싶고 광개토대왕 역할도 해보고 싶다. 기회가 되면 우리나라에서 건드리면 안 되는 딱 두 분, 이순신 장군님과 세종대왕 연기도 해보고 싶다"고 너스레였다. 왕이 아닌 다양한 사극 속 인물들도 해보고 싶단다. 특히 이번 영화 속에서 공신들은 무겁고 진중한 반면, 광대들은 유쾌하고 신명난다. 그는 극 중 광대패의 우두머리 덕호 역을 맡은 조진웅을 "제가 굉장히 사랑하는 동생"이라고 언급하며 "광대들 노는 거 보면 정말 신나지 않냐. 저희가 대학로 출신이게 마당에서 판을 꾸미고 사람들에 '내가 하는 걸 봐라'하고 재주를 부리는 것이니 정말 신나 보였다"고 했다.

이어 "광대로 살아가는 건 참 즐거운 일인 것 같다. 저도 남의 옷을 입고 광대로 살아가지만 배우란 참 즐겁고 재밌는 일"이라고 미소 지었다. 행복감과 충만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미소였다.

그는 '광대들:풍문조작단' 촬영 당시 아침에 촬영이 끝났을 때도 다들 제 방에 모여 막걸리잔을 기울였단다. "늘 할 말이 많았다. 안주도 대단한 것도 아니다. 편의점 족발, 소시지 이런 걸로 판을 벌여도 매일 소재가 다른 말들이 쏟아지고 그때는 피곤한 줄도 모른다. 사실 그때가 제일 즐거운 거다"라며 너스레였다. 참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다.

팬들의 사인 요청에도 귀찮은 기색은 전혀 없이 일일이 사람 좋은 미소로 응대하는 그다. 이에 "전 늘 편하게 열어두는 사람이다. 사인하고 사진 찍고 이런 건 사실 별거 아니다. 이런 작은 행동들이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어린 친구들이 저를 좋아해 주고 제 영화나 드라마를 봐주시는 게 고맙다. 제가 나중에 죽고 없더라도 아이들이 '맞아, 그 아저씨 좋은 배우였어'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뿌듯하겠나"라는 손현주다.

그에게 행복은 별게 아니다. 식사 시간을 앞두고 뭘 먹을까 고민하는 것도 그에겐 행복이었다. 물론 스스로에게 흐트러지지 말자고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경지가 어디 있겠나. 계속 달려가는 거다"라는 그다. 가만히 있어도, 별 거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연기가 되는 배우를 꿈꾸는 손현주는 "커다란 욕심은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숨이 붙어 있는 한은 연기하고 싶고 그렇게 사는 동안은 사람들 마음속에 소박하게나마 늘 편안한 사람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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