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배우 정성일이 슈트를 벗었다. 대신 후드를 썼다. 한도(限度) 없이 펼쳐낸 정성일의 '트리거'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트리거'(연출 유선동)는 이 꽃 같은 세상, 나쁜 놈들의 잘못을 활짝 까발리기 위해 일단 카메라부터 들이대고 보는 지독한 탐사보도 프로 놈들의 이야기다. 지난 19일 12부작으로 막을 내린 '트리거'에 대해 정성일은 "보시는 분들이 재밌게 잘 보셨다고 해서 저도 재밌게 봤다. 좀 짧게 느껴지더라"며 "찍었던 시간에 비해서 너무 빨리 끝나는 게 아닌가 싶다. 봐주신 분들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1> 앞서 완벽한 슈트핏에 정돈된 모습을 갖춘 캐릭터들로 대중과 만나왔던 정성일은 이번에 한없이 자유로운 MZ PD 연기에 도전했다. 이에 대해 정성일은 "대중들이 아는 저는 슈트를 입은 캐릭터다. 하지만 저는 다른 모습도 할 수 있다. 대중이 저에게 좋아하는 모습을 알고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 모습을 길게 보여드린다면, 금방 식상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이미지는 소모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제가 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들이라면 스펙트럼도 넓어지고,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도'라는 캐릭터는 저에게 너무 매력적이었다. 가장 내추럴하고, 편하게,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성일이 연기한 한도 PD는 드라마국에서 시사교양국으로 쫓겨난 한도는 '트리거' 팀에 불시착한다. 동시에 한도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살아가는 인물로, MZ의 표본으로 그려진다. 한도에 대해 정성일은 "한도는 슈트도 입지 않고, 구두도 신지 않는다. 제가 평소에 입는 옷 스타일 그대로였다. 한도가 후드티를 자주 입고 나오는데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캐릭터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며 "머리도 더벅머리였는데, 중반부 변화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숍에 가서 12시간 동안 이 머리도 해보고, 저 머리도 해보면서 조금 더 폐쇄적으로 보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오타쿠 같은 느낌이 나길 바랐고, 꽤 오랜 시간 외형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정성일의 말처럼, '트리거' 팀에 처음 떨어진 한도는 한없이 폐쇄적이다. 물과 기름처럼 팀원들과 섞이지 않고, 섞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한도에게 오소룡(김혜수)을 비롯한 팀원들은 자신의 삶에 잠시 스쳐 지나갈 인물들이다. 그런 한도에 대해 정성일은 '개인주의'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기주의는 자신만 알지만, 개인주의는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며 "그렇다고 남에게 좋은 것을 해주지도 않지만, 자기만 지키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시간이 지나며 마음이 열리고, 사람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이야기했다. <@2> 다만 '트리거'는 첫 회 공개 직후 한도가 90년생 설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한차례 논란(?)이 됐다. 실제 정성일은 1980년생으로, 한도와는 10살이 차이 난다. 여기에 'MZ 설정'까지 덧붙여지며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MZ 논란'이 언급되자 정성일은 "저도 방송을 보고 알았다. 중고 신입이라고 해서 저 스스로 30대 후반 정도로 생각했다. 저에 비해 5살 정도 어리다고 생각했었다"며 "근데 방송이 나오고 나서 주위에서 '네가 왜 90이냐' '열 살은 너무 하지 않냐'라고 하더라. 저도 몰랐다. 적잖게 당황했다"고 웃음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정성일은 "MZ라는 건 알았다. MZ의 폭이 넓은 것으로 안다"며 "제가 생각하는 MZ시대는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는 걸 잘못되지 않은 선에서 상하관계를 따지지 않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 부분이 한도의 가장 MZ스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극 중 '트리거' 팀 소속 한도는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며 부딪히고, 성장해 나간다. 정성일의 표현처럼 '개인'이 우선이었던 한도는 점차 '트리거' 팀에 스며들어간다. 한도의 변화와 함께 이를 연기한 정성일 역시 점점 몰입해 갔다. 그중에서도 정성일이 꼽은 최고의 에피소드는 2, 3부에 등장하는 고양이 연쇄 살인사건이다. 정성일은 "갇혀있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준비기간 동안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를 나누며 한도의 감정선을 점차 해소해 가기 시작했다. 후반부로 가면서 한도의 변화 과정을 보여줘야 하는데 어느 정도로,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 변화하는 걸 명확히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다"며 "핵심이 된 건 할아버지의 장례식장 장면이었다. 할아버지의 빈소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다른 빈소들은 사람들도 많고 왁자지껄하다. 그 촬영을 하면서 스스로 내면적 변화를 느꼈다. 연기를 하는데 내 가족이 아님에도 너무너무 서운하고, 서글퍼지더라. 감정의 지점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그 장면이 너무 고마웠다"고 회상했다. 또한 정성일은 "할아버지가 한도를 처음 만났을 때 손을 가져다 매직을 칠해주지 않냐. 그게 한도에겐 어떤 선입견도 없이 그를 바라봐 준 첫 사람이었다. 그래서 유독 그 에피소드에 애착이 갔다"며 "사실 그렇게 와닿을 줄 몰랐다. 장례식장을 걸어가는데 빈소가 너무 처량해 보였다. 화도 나고, 서글프고, 다른 사람들이 잘못한 게 아닌데 미워졌다. 정말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오고 간 장면이었다"고 털어놨다. <@3> 특히 해당 에피소드에선 아역 배우 문우진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로 등장해 압도적인 연기력을 보여줬다. 정성일과 문우진이 마주한 병실 장면에선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했다. 해당 장면이 언급되자 정성일은 "(문)우진이는 애늙은이 같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아이가 아니라 배우 대 배우로 만나는 느낌이다. 우진이도 저한테 그렇게 대한다. 보통 나이차이가 많이 나면 '선배님'이라고 호칭하는데 저에게 '배우님,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하더라. 그 친구도 저를 배우로 생각해 준다는 느낌이 들어서 같이 작업할 땐 나이와 상관없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영어 장면 역시 우진이의 의견이었다. 원래 있던 한글 대사를 영어로 바꿨다. 정말 대단한 친구인 것 같다. 그 나이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어른 배우랑 같이 하는 것 같았다"고 감탄했다. '한도'로서 무사히 '트리거' 완주를 끝낸 정성일은 "캐릭터가 자유롭다 보니 촬영하는 내내 자유로웠다. 마음이 편하더라. 접근할 수 있는 방식들이 너무 많았고, 감독님도 열어주시는 범위가 많아서 저도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정말 재밌게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며 "그전엔 감정을 표출할 만한 캐릭터들이 많이 없었다. 항상 참고, 애써 표현하지 않아야 하고, 눌러 담아야 했는데 이번엔 감정에 자유롭고 신나게 놀았던 느낌이 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트리거' 최종회에선 뜻밖의 인물의 생존 여부가 공개되며 시즌 2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놨다. 시즌 2가 언급되자 정성일은 "저희끼리는 다음 시즌을 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현장이 너무 좋았다"며 "저희끼리 얘기한 건 구형태(신정근) 사장이 잡혀가면 박대용(이해영) CP가 사장이 되고, 그럼 오소룡 팀장이 CP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이에 한도의 팀장 진급 가능성이 언급됐으나, 정성일은 "한도는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은데"라고 웃음을 보였다. 아울러 정성일은 '트리거'에 대해 "김혜수이기도 하고, 주종혁이기도 하고, '트리거' 팀이기도 하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애정을 과시했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