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 아이돌' 설경구, '우상'을 만나다 [인터뷰]

입력2019년 03월 14일(목) 17:19 최종수정2019년 03월 14일(목) 17:19
영화 우상 설경구 인터뷰 /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설경구는 여전히 연기를 맹목적으로 좇는다. 연기엔 백 프로 완성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조금만 더 잘해보고 싶단 욕심이 생긴다고. 적당히 꾀부릴 줄 모르는, 미련할 정도로 우직한 배우의 진심이다.

자위까지 대신해 줄 정도로 끔찍하게 사랑하던 정신지체 아들이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던 조선족 여자와 결혼 후 떠난 신혼여행지에서 뺑소니 사고로 죽었다. 며느리는 사고 현장에 없었고, 자취를 감췄다. 이틀 만에 자수한 가해자는 도지사 출마를 앞둔 정치인의 아들이다. 영 찝찝하고 수상하다. 그러나 진실을 파헤치는 아버지의 가엾은 사투는 핏줄에 대한 집착으로 변모하며 조금씩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설경구가 연기한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제작 리공동체영화사)의 유중식이다.

"친절하진 않을 것"이란 예고를 미리 들었기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얼마쯤은 예상했지만, 설경구에겐 유중식이 취하는 행위들이 영 답답했다. 보편적인 인물도 아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인물도 아니다. 아들과 고립된 생활을 했던 남자가 아들을 잃고 극단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간다. '이게 뭐지? 왜 이렇게 결정하지?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설경구는 유중식이 궁금해졌다. 이 알 수 없는 궁금증은 '우상'을 택한 이유가 됐다.

설경구는 유중식에 몰입하며 인물의 감정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아들과 견고한 성을 쌓고 살던 유중식은 아들의 죽음이란 사건으로 이 울타리가 깨졌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있었을 테다. 다시 성을 쌓고 싶었을 테고, 그러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제한적이었다. "이 사람은 오롯이 내 것도 아닌 것을 내 것으로 하려다 보니 잔인한 선택을 강요당한다. 그러다 차가워진 상태에서 마지막 한 마디를 한다. '몹쓸병에 걸렸는데 내가 아픈지도 모르고 살았구나'." 그 마지막 대사 하나에 유중식을 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단 설경구다.

이 짧은 대사 하나가 그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전율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혹은 배우가 제게 주어진 캐릭터에 동화되는 지점, 숙명적인 이끌림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설경구는 이에 대해 설명을 보탰다. "가장 뜨겁게 시작해서 차갑게 끝나는 인물이 중식이었다. 등장인물 셋 다 몹쓸병에 걸렸는데 중식이 혼자 마지막에 이를 인정했다"는 그는 "저도 영화를 다 찍고 나니 몹쓸병에 걸린 것 같고 다들 병 걸려 있는 세상 같단 생각을 했다"고 고백했다.

이는 비뚤어진 집착과 신념을 우상이라 믿으며 맹목적으로 달려온 이들이 맞는 파국을 통해 참혹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감독이 의도했던 '우상'의 메시지가 설경구의 뇌리에도 강렬히 각인된 까닭일 테다.

이처럼 캐릭터의 삶을 헤아린 뒤 설경구는 더욱 세밀하고 집요하게 유중식으로 변해갔다. 유중식이 거쳐온 삶의 고단함을 표현하려 태닝을 했고, 지저분한 탈색 머리도 과감하게 실행했다. 주책맞아 보이는 노란 탈색 머리는 아들의 머리색과 같아 이들 부자의 동질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혹시라도 아들을 잃어버리면 금방 찾을 수 있게 하려 염색을 했을 거란 발상이었다.
영화 우상 설경구 인터뷰 /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게다가 유중식은 행동거지가 늘 과격하고 성급한데, 이는 점심을 뜻하는 중식이란 이름에 의미가 숨겨있다. 늘 헐떡이며 숨차 하는 모습은 아침을 건너뛰고 허겁지겁 먹는 점심 같다. 그 이름에 시작부터 끝까지 고달프고 고단한 인물의 전사가 암시돼 있다. 또 유중식은 아들과 유대감이 워낙 강하다 보니 아들의 말투나 목소리를 자연스레 따라 하게 됐을 것이었다. 설경구가 시체 보관실에서 아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뒤로 도망가며 웅크리고 앉아 어린아이처럼 "아니에요. 아니에요"를 반복하는 모습은 그래서 나왔다. 설경구는 "그런 몇몇 장면에서 아들의 모습이 튀어나왔으면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 어떤 대사 없이 표정, 주름, 눈빛으로도 짙은 감정의 진폭을 전달하는 건 이토록 철저하고 집요하게 인물에 동화됐기 때문일 테다. 그럼에도 설경구는 "이 영화는 절대 떠먹여 주지 않는다. 제가 안 해봤던 톤의 영화였다. 제 연기가 맞는 건지 틀린 건지를 모르겠더라. 조금 계산을 했다면 어땠을까 후회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토록 스스로에 인색할 만큼 치열하게 몰입한 탓인지, 감독은 설경구더러 "항상 독을 품고 현장에 와 있는 배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설경구는 "중식은 첫 등장부터 인물의 전사 없이 그냥 쳐들어간다. 아들이 죽었단 얘길 듣고 이미 절정에 달해 있는 상태"라며 "독이 올라 흥분된 상태로 있기에 준비를 하고 와야 했다. 그래서 촬영장 가면 제 신은 거의 숨이 차 있더라"고 쑥스러워했다.

'지천명 아이돌'이란 수식어가 자연스레 따라붙게 된 순간부터, 설경구의 변화가 체감됐다. 이전엔 왜인지 거칠고 독한 기운이 가득해 보였던 그다. 주로 강렬하고 범상치않은 캐릭터들을 줄곧 맡아온 탓일 테다. 그런 그의 속내가 이토록 사려 깊고 다정한 것이었다. 팬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늘 어쩔줄 몰라하며 온 마음으로 고마움을 표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꽤 훈훈하고 간지러운 감상을 전하는 게 사실이다. 그는 "제가 변화한 건 사실 모르겠다. 변해야지, 생각하는 것도 잘 모르겠다. 작품 선택할 때도 늘 해온 대로 하니까. 그런데도 응원하고 좋아해 주신다. 이렇게 얼굴이 구겨져도(웃음). 매일, 늘 감동받는다. 정말 눈물겨울 정도로 피부로 느끼는 감동"이라며 팬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숨기질 못한다.

변한 듯해도 실은 변하지 않은 설경구다. 연기에 대한 지독한 열망, 제가 누리는 것들을 당연시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 그 진심은 결국 통하기 마련이다. 그는 배우 인생 최절정의 인기를 누릴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영화 우상 설경구 인터뷰 /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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