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추억의 고전 오락실 게임 속 히어로가 아닌, 악당의 외로운 내면 심리를 그리며 따뜻하고 유쾌한 감상을 안긴 '주먹왕 랄프'가 7년 만에 돌아왔다.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감독 필 존스턴)다.

비주류란 틀에서 차별과 고통을 받던 랄프와 바넬로피가 우여곡절을 겪고 '슈퍼 절친'이 된 지, 7년째. 늘 반복되는 일상과 친구가 있기에 평온함을 느끼는 랄프와 반대로 바넬로피는 무료함을 느끼며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한다.

랄프는 바넬로피를 위해 '슈가 러쉬'에 새로운 초콜릿 트랙을 만들고, 짜릿한 변화에 즐거워하는 바넬로피를 보며 기뻐한다. 하지만 게임기가 망가지고 '슈가 러쉬'는 사장될 위기에 처한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 우울의 늪에 빠진 바넬로피를 위해 랄프는 그와 함께 게임 부품을 구하러 인터넷 세상으로 뛰어 든다.

전작이 아케이드 게임 세계를 재치 있게 표현했다면,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는 환상적인 온라인 세상을 구현하며 경이로운 비주얼을 완성했다.

랜선을 타고 빛의 속도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인터넷 공간은 무궁무진한 정보와 콘텐츠의 바다를 하나의 거대한 세계로 시각화하며 탄성을 자아낸다. 인터넷 유저들은 '미니미' 캐릭터로 표현돼 광활한 인터넷 세상을 누빈다.

미니미들을 원하는 웹사이트까지 순식간에 이동시키는 운송차량은 속도가 느리면 벌점을 받는단 교통 안내를 받고, 검색엔진과 팝업창 바이러스까지 인터넷 아이템들이 인격화된 모습이 흥미를 유발한다. 이를테면 자동완성 기능을 탑재한 검색엔진 안내원이 유저가 묻기도 전에 수없이 비슷한 유형의 단어를 외쳐대는 모습, 홍보 문구가 써진 판넬을 들고 클릭을 유도하는 영업사원이 강력한 팝업 차단 프로그램 경호원에 쫓겨나는 모습, 트위터 이미지를 대표하는 수많은 파랑새 무리가 나무에 모이를 가져오면 공유 콘텐츠가 되는 모습 등이다.

랄프가 경매 비용을 벌기 위해 찾아간 동영상 사이트 버즈 튜브 역시 인터넷 유저들이 거대 화면을 보며 하트를 날리고, 이를 직원들이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등 인터넷 세상의 실체화는 기발한 상상력을 엿보게 한다. 이밖에도 경매장으로 분한 이베이, 웹사이트 규모와 특징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건물로 표현된 각종 포털사이트를 비롯해 거대한 빌딩 숲 속 네이버, 카카오, 라인, 멜론 등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들을 찾아보는 것도 묘미다. 거대하고 활기찬 인터넷 세상의 화려한 이면엔 잊혀진 웹사이트들이 여전히 지하 세계에 존재하며 그곳을 '슬럼가'처럼 표현하고 온갖 불법 바이러스가 거래되는 암시장으로 비유한 것 역시 기발하다.

쳇바퀴 도는 지루한 일상 속 존재 이유를 찾던 바넬로피가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슬로터 레이스' 게임 속 스릴과 박진감 넘치는 레이싱 장면도 볼거리다.



영화는 아케이드 오락실 게임에서 더욱 확장된 공간과 세계관을 구축한 것만으로도 가치있다. 여기에 주인공의 우정과 성장이란 테마를 녹여낸 서사는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슬로터 레이스 게임의 리더 섕크에 마음을 뺏긴 바넬로피 때문에 불안과 집착을 보이는 랄프의 모습은 전편에서 보여준 고독한 악당의 내면 심리와 연결고리를 갖는다. 하지만 악당이어도 마음 따뜻하고 속정 깊은 랄프가 진짜 악당 짓을 저지르며 폭주하는 모습, 그리고 이를 거대한 랄프 복제로 이어가는 결말 부분은 지나치게 과장된 설정으로 다소 몰입을 방해한다.

다만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무너지지 않는 신뢰를 쌓은 두 사람이 각자를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는 엔딩은 진정한 우정과 성장의 의미를 말한다.

역대 디즈니 공주들이 모두 모인 장면은 이번 영화 최대의 관전 포인트다. 드레스를 벗고 요즘 패션 스타일로 변신한 모습부터 "힘세고 덩치 큰 남자"의 도움을 받기보다 도리어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도움을 주는 사랑스럽고 씩씩한 여인들의 모습은 유쾌하고 흥미롭다. 지난 디즈니의 세계관 속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상을 과감히 탈피한 '힙한' 언니들의 반전이다. 1월 3일 개봉.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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