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류현진(LA 다저스)은 언제나 가장 먼저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였다. 2013년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64경기를 모두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KBO 리그에서도 190경기 가운데 181경기를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구원 등판은 9차례에 불과했다.

그랬던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입성 이후 처음으로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전날부터 류현진을 롱릴리프로 기용할 의사를 밝혔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2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와의 홈경기에서 류현진을 6-3으로 앞선 6회초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렸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풍부한 선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다저스는 그동안 클레이튼 커쇼와 알렉스 우드, 브랜든 맥카시, 류현진, 마에다 겐타, 리치 힐, 훌리오 유리아스 등 7명의 선발투수를 활용해 선발 로테이션을 꾸렸다. 선발진이 과포화상태에 이를 때마다 한 선수씩 부상자 명단에 올리는 꼼수(?)도 사용했다. 하지만 그러한 편법을 시즌 내내 사용할 수는 없었다. 결국 로버츠 감독은 유리아스를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낸데 이어, 류현진을 선발진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사정이 있었다지만, 류현진에게는 웃을 수 없는 상황임이 분명했다. 똑같이 마운드에 오르지만 선발투수와 불펜투수의 컨디션 관리법은 천양지차다. 규칙적으로 마운드에 오르는 선발투수와는 달리 불펜투수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 등판할지 모른다. 지난 2년간 부상으로 고생하다 겨우 복귀한 류현진에게는 불펜투수로 등판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류현진은 첫 불펜 등판에서 4이닝 2피안타 2탈삼진 1볼넷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팀의 7-3 승리를 지키며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첫 세이브까지 추가했고, 평균자책점도 4.28(40이닝 19자책)로 끌어 내렸다.

이날 류현진의 포심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91마일(146Km/h)에 그쳤고, 그나마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87-88마일(140Km/h) 정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류현진은 노련한 투구로 상대 타자들을 요리했다. 12개의 아웃카운트 가운데 9개를 땅볼, 2개를 삼진, 1개를 뜬공으로 잡았다. 이날 5이닝 3실점을 기록한 마에다와 전날 등판서 4이닝 5실점에 그친 힐보다 훨씬 안정적인 투구였다.

성과도 있었다. 비록 불펜 투수로 등판했지만 4이닝을 소화하면서 그동안 선발투수로서 지켜왔던 루틴을 유지했다. 어쩌면 오늘의 등판이 류현진에게는 선발진 재진입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이 롱릴리프로 등판하더라도, 영구적이지 않고 일시적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팀을 위해 군말 없이 불펜투수로 오른 류현진에게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우려했던 첫 불펜 등판서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뒀지만, 한국 팬들에게는 류현진이 경기를 시작할 때 마운드에 서있는 모습이 익숙하다. 류현진이 다시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빠른 시간 안에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상필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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