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경찰서=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야구만 잘하면 되는 걸까?

음주운전 사고로 경찰조사를 받고 돌아가는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뒷모습을 보며 든 생각이다.

강정호는 6일 오후 2시44분께 서울 강남경찰서에 출석해 약 1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강정호는 지난 2일 오전 2시48분께 삼성역 인근에서 음주운전 도중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달아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당시 강정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84%에 달했다.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수치다.

음주운전 사고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강정호는 외부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고 당일 오후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한 것이 전부다. 그사이 사고 당시 동승자와의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했고, 과거 두 차례 음주운전 적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이날 경찰조사는 강정호가 사건 이후로 처음으로 공개적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야구팬들을 향한 솔직한 고백과 진솔한 사과가 나와야 했다.

하지만 경찰서에 도착한 강정호는 굳은 표정으로 "정말 죄송하다. 성실히 조사받고 나오겠다"는 말만 남긴 뒤, 조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서 입장부터 조사실로 들어가는 시간은 불과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취재진의 질문에는 일절 답하지 않았다.

약 1시간의 경찰 조사가 끝난 뒤에도 강정호의 답변에는 변함이 없었다. "죄송합니다"는 말 외에는 침묵을 지켰다. 추가된 말이라고는 "(경찰 조사에)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앞으로 야구로써 보답할 일밖에 없는 것 같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팬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정확한 사고 경위와 운전자 바꿔치기 시도 과정에 대한 설명, 과거 음주운전 전력에 대한 고백, 진솔한 사과는 찾을 수 없었다.

반복적으로 "죄송합니다"고 말했지만, 왜 죄송한지, 어느 부분이 죄송한지는 말하지 않았다. 결국 남은 것은 "야구로써 보답할 일밖에 없는 것 같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야구로 보답하겠다"

생각해보면 불법 도박으로 물의를 빚은 선수도, 사생활 논란을 일으킨 선수도, 시즌 후반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외국인선수도 이 말을 했다. 사고를 쳐도 운동만 잘하면 면죄부가 주어지던 예전의 풍토를 대변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동안 팬들은 운동선수들에게 참 너그러웠다. 어지간한 사건사고는 잠시의 반성만으로 용서해주곤 했다. 특히 국내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프로야구 선수들은 한없는 자비와 관용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그만큼 팬들도 현명해졌다. 팬들은 더 이상 야구를 잘한다고 자신들이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 가장 실망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들은 강정호를 누구보다 열심히 응원했던 팬들이다. 이들은 "그동안 강정호를 응원한 시간이 아깝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이들이 민감한 것일까? 아니면 선수가 무감각한 것일까? 팬들에게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말은 사과로 들렸을까? 적반하장으로 들렸을까?

벌써부터 팬들은 강정호에게 '야구만 잘하면 다냐?'고 되묻고 있다. 적어도 이들이 원하는 대답이 타율 3할이나 30홈런 따위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강정호는 앞으로 야구를 얼마나 잘하면 팬들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확실한 것은 30홈런보다는 진솔한 사과가 쉽다.


이상필 기자 sports@stoo.com
사진=팽현준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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